명절에 제주로 도망치는 이유는 대개 비슷합니다. 잔소리도 피하고 사람도 피하고 싶은 거죠. 그런데 막상 이름난 관광지에 가면 서울 한복판만큼 붐빕니다.
추석 제주 한적한 여행지로 다섯 곳을 골랐습니다. 연휴에도 주차 자리가 남아 있고, 걷는 동안 마주치는 사람이 손에 꼽히는 곳들이에요. 네 곳은 상시 개방이라 입장 시간에 쫓길 일도 없습니다.
1. 차에서 내리면 바로 절벽과 바다, 수월봉 — 제주시 한경면

제주에서 가장 서쪽인 한경면 고산리, 넓은 들판이 끝나는 해안에 높이 77m의 봉우리가 솟아 있습니다. 관광버스 동선에서 한참 벗어나 있어 연휴에도 주차장이 여유로운 편이에요.
차를 세우고 몇 걸음만 옮기면 바로 절벽 위 전망이 열립니다. 정상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육각정 수월정이 있고, 해안을 따라 난 길에서는 켜켜이 쌓인 화산 지층과 곳곳에서 솟는 용천수를 볼 수 있어요. 바람이 센 날일수록 파도 소리가 좋습니다.
상시 개방하고 주차 공간이 있습니다. 문의 064-740-6000.
2. 분화구를 품은 숲 언덕, 저지오름 — 제주시 한경면

수월봉에서 차로 십오 분쯤 안쪽으로 들어가면 저지리 마을 뒤편에 오름 하나가 서 있습니다. 둘레 약 900m, 깊이 약 60m의 깔때기 모양 분화구를 품고 있어요.
해송과 잡목이 빽빽해 오르는 길 내내 그늘이 이어지고, 정상 전망대에 서면 한경면 들판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오름에 비해 찾는 사람이 적어 올라가는 동안 발소리만 들립니다.
상시 개방하며 주차 가능합니다. 문의 064-728-7952.
3. 바다를 옆에 끼고 걷는 송악산 둘레길 — 서귀포시 대정읍

산방산 남쪽, 가파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바닷가에 솟은 산입니다. 작은 봉우리가 99개 모여 있어 99봉이라고도 부르고, 1차 폭발로 생긴 분화구 안에 또 하나의 분화구가 들어앉은 이중 분화구 지형이에요.
정상까지 오르지 않아도 좋습니다. 제주올레 10코스와 이어지는 둘레길만 걸어도 형제섬과 가파도, 마라도가 차례로 눈에 들어옵니다. 길이 평탄해 속도를 내지 않고 바다만 보며 걷기에 알맞습니다.
상시 개방하고 주차장이 있습니다.
4. 밭 사이에 역사가 남은 알뜨르비행장 — 서귀포시 대정읍

송악산에서 차로 오 분 거리, 대정읍의 넓은 들판에 일제강점기 군사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원형에 가깝게 보존된 격납고 19기와 관제시설, 대공포 진지의 흔적을 볼 수 있어요.
지금은 이 땅이 농경지로 쓰이고 있어서 밭 사이사이에 격납고가 놓인 풍경이 됩니다. 매표소도 안내방송도 없고 오가는 사람도 드물어, 아무 말 없이 한 바퀴 돌기에 이만한 곳이 없습니다.
상시 개방하고 주차 가능합니다. 문의 064-710-6708.
5. 돌담 사이를 천천히 걷는 제주돌문화공원 — 제주시 조천읍

제주의 돌문화를 모아 둔 박물관이자 생태공원입니다. 부지가 워낙 넓어 관람객이 있어도 자연히 흩어지기 때문에 붐빈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아요.
돌 박물관과 전시관, 제주 전통 초가가 차례로 이어지고 그 사이를 잔디밭과 돌담길이 잇습니다. 실내 전시가 있어 비가 와도 일정을 바꾸지 않아도 되는 점이 연휴에는 특히 편합니다.
09:00부터 18:00까지 열고 매표는 17:00에 마감합니다. 매주 월요일과 추석 당일은 쉬니 연휴 중 다른 날로 잡으시면 됩니다. 문의 064-710-7732.
조용히 묵을 곳까지 정한다면
다섯 곳 중 두 곳이 한경면이라 이 권역에 숙소를 잡으면 다음 날 아침 동선이 짧아집니다. 용수리 쪽에 독채형 펜션이 하나 있는데, 한 채를 통째로 써서 다른 투숙객과 마주칠 일이 없어요. 마당에 개별 바비큐 공간이 있고 객실에서 OTT도 볼 수 있어, 하루 종일 나가지 않아도 심심하지 않습니다. 매점과 편의점도 가깝습니다.
연휴 잔여 객실은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수월봉과 저지오름은 한경면, 송악산과 알뜨르비행장은 대정읍이라 각각 묶으면 하루에 두 곳씩 여유롭게 돌 수 있습니다. 돌문화공원은 제주시로 돌아오는 길에 넣으면 동선이 깔끔합니다.